기후변화 보고서
어느 환경 운동가의 수기
XX년 1월 30일
높아지는 해수면, 녹아 내리는 빙하,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 전부 말로만 듣던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난 실감했다. 기후변화는 진짜다. 이 지역만 해도 10년 전에는 이맘때에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고 등교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는 눈이 아예 내리지 않았다. 단 1mm도.
XX년 4월 5일
오늘 이 지역 정치가들 앞에서 발표를 했다. 지난 30년간 이 지역의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빙하가 깨어지고 얼음지대가 줄어든 것을 이야기하니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한다. "그거 좋은 거 아닌가요? 전 오히려 따뜻해져서 좋던데." 나는 그 사람 멱살을 잡고 외치고 싶은 걸 참았다. 이 멍청이들아! 너희는 어떨지 몰라도 당장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물에 잠겨가고 있다고!
XX년 6월 27일
아무리 생각해도 기후변화는 인재(人災)다. 사람이 줄어야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고, 사람이 줄어야 산림 벌채가 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몇몇 나라에서 보고되는 출산율 감소는 썩 나쁘지 않은 시그널이다. 요즘 뉴스에서 난리인 외계인 이야기도 뭐, 지구의 인구수가 줄 거라는 의미에선 나쁘지 않을지도?
XX년 9월 3일
전 세계의 공장들이 멈췄다. 이미 세계의 절반은 외계인에게 점령당했고, 빼앗은 땅에서 그들은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살았던 양 평화롭게 저들끼리 무리지어 살고 있다. 그곳에는 인간이 없다. 따라서 환경오염도 없다. 나는 그곳이 낙원인지 지옥인지 잘 모르겠다.
XX년 12월 15일
오랜 시간 쉘터에 숨어있다 나오니, 눈과 얼음은 10년 전 포토 카드에서 봤던 것보다 더욱 맹렬하게 맨땅을 뒤덮고 있었다. 오직 눈썰매를 타는 어린아이들만이 보이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나는 딱히 자연을 걱정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더는 우리 인간이 살 수 없게 될까봐 무서웠던 것이다.